<마돈나> 오쿠다 히데오, 2002년 작
지금까지의 부꾸라뷰에서 다룬 고전소설들과 달리 첫 번째로 다룬 2000년대 작품인 데다가 일본 소설 작품인 <마돈나> 나의 선택이었다. 나는 책을 많이 사지 않는 대신 마음에 드는 작가일 경우 전작주의로 그 책을 모으는 경향이 있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이 오쿠다 히데오다. 내가 전작주의를 지키고 있는 작가는 이언 매큐언, 쑤퉁, 위화, 김경욱, 김언수, 레이먼드 카버, 오쿠다 히데오 정도인데 사실 김경욱의 경우에는 책만 사 놓고 정작 읽지 않아 미안할 정도. 오쿠다 히데오는 책을 너무 많이 내서 전작주의를 지금은 포기한 상태다. 일본소설을 즐겨 읽다가 한동안 거의 안 읽었는데, 누군가 추천해 준 <남쪽으로 튀어>가 내 마음을 완전히 흡족시켰기 때문에 그때 주머니를 털어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들을 모조리 사들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오쿠다 히데오는 인기가 많다 보니, 책이 물량도 많고, 할인도 많고, 중고책도 많다. 마돈나 역시 인터넷 서점의 50프로 할인 행사를 이용해 샀을 것이다. <공중그네> 와 <인 더 풀>을 본 이후, <한밤중에 행진>을 보며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에 피로감을 느꼈던 것 역시 사실이다. <마돈나>의 책장 역시 열어보지 않았지만, <공중그네> 스타일의 옴니버스 장편 같은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 챕터인 <마돈나>를 보며, 역시나 금세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일상 속에서 흔히 만날 수 있지만 말하지 않는 그 욕망들을 코믹하고 유쾌하게 그려내는 오쿠다 히데오의 장기에 킥킥거렸다. 그런데 이게 웬걸, 챕터가 끝나니 이야기가 끝났다. 아! 이것은 장편이 아니라 단편집이었던 것이다. 마돈나에 대한 소설이 아니라 중년 세일즈맨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작가 이름만 보고 책을 사들이는 나의 성격은 이런 오해를 낳기도 한다. 하지만, 이후의 내용이 흥미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쿠다 히데오의 유쾌한 칼날은 여전히 조직과 사람들의 마음을 후비고 다닌다.
<마돈나>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기존의 낡은 권위주의, 패거리 문화, 관행적 부패에 젖어 있는 인물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그 가치를 개혁과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망가뜨리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바로 그곳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의 싸움, 조직과 개인의 싸움, 그 알력이 일어나는 현장에서 오쿠다 히데오는 개혁의 손을 살짝 들어준다. 무능한 월급쟁이이기 일쑤인 보통 직장인들이 느끼는 생각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그들이 오히려 진보적인 태도에 공감하고 교화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야말로 세상을 바꾸고 싶은 소설가들이 사용하는 전형적인 의태의 기법이다. 당신의 이야기를 하는 듯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당신도 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 시대의 흐름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작가의 설득에 누군가는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의 사회 참여란 사실 고작 그 정도다.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고, 그 안에 설득의 메시지를 넣어놓지만, 그 설득은 받아들여도 좋고 안 받아들여도 좋다. 이야기의 재미에만 집중해도 좋고 농담들에만 웃어도 좋다. 하지만 소설가라면, 그 정도 층위는 만들어놓아야 한다. 그냥 재미와 이야기에만 집중하다 보면 메시지가 아예 없는 소설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있을 때, 이야기 자체가 깊은 맛이 생긴다.
모임 때는 <마돈나>이야기에 주목해 중년의 사랑과 바람을 피우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소설의 테마는 그것이 아니었으니까.



